[패닉 룸] 안방에 침입한 외부의 적

2008. 12. 21. 18:44미국영화리뷰

반응형



   서구인들이 우리나라의 민족성의 일단을 이야기할때 월드컵 거리응원을 들기 시작했다. 집단 광기의 화신으로... --; 이전에 이데올로기가 내포된 집단광기의 예로 '방공호'란 게 있었다. 공산당이 화생방무기로 쳐들어올 것이니 미리미리 땅굴을 파고 대비를 하자는 것이다. 물론 1970년대에 우리나라에도 동네마다 이런 콘크리트 굴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미국에서도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할때 즈음하여 원자폭탄에 대한 두려움 이런 비현실적인 광기로 표출되기도 했다. 왜 비현실적이냐고? 우선 수용인원이 한정되어 있고, 땅 속 겨우 몇 미터의 굴 속에서 방사선 낙진을 수 개월동안 이겨낸다는 것은 서바이벌 게임치고는 불공정한 게임인 것이다. 그런데, 미국 뉴욕에서 911테러가 발생하고나선 좀더 현실적인 광기가 문명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꼭 갑부나 부자가 아니더라도 자기 앞마당에 방공호를 건설하는 유행이 일고 있다고 한다. 우리 돈으로 수천 만원에서 수 억원에 이르는 다양한 스팩으로 말이다. 오늘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영화를 한 편 보았다. 바로 <패닉 룸>이다.

패닉 룸(panic room)은 다른 말로 '세이프 룸'이라고 한다. 영어단어 공부 좀 했다면 'safe'가 명사로 '금고'의 의미로 쓰인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금고같은 방'이라... 백악관에도 금고방이 있고, 많은 부자들은 오래 전부터 이런 금고방을 자기 집에 갖추어 둔다고 한다. 집안 벽 어딘가에 비밀 문이 있고 그 안에 이런 패닉 룸이 갖춰져 있는 것이다. 좁은 공간에는 몇달 치의 비상식량이 있고, 외부(대저택)의 구석구석을 비춰주는 모니터가 있고.. 뭐 그런 곳. 그런데 이런 비밀 방을 만든 이유는 좀더 현실적이다. 한 밤에 치밀한 계획을 세운 강도들이 집안에 들이닥쳤을 경우이다. 예상할 수 있는 강도들? 문 따는 것이나 금고 여는 것에는 도사인 강도들. 일당 중 한둘은 경찰이나 보안관계출신이라서 집안에 침입해 들어오면서 SECOM(^^)이나 전화선은 당연히 절단할 것이다. 그리고 경찰이나 외부인의 갑작스런 방문에도 유연하게 넘길 연기력까지 겸비했을 것이다. 집안에 있는 선량한 사람들은 생명을 위협받는 외부인의 침입에 대비하여 이 패닉룸에 들어가는 것이다. 우와.. 과연 어떻게 될까?


조디 포스터와 그의 어린 딸이 뉴욕의 한 아파트에 이사온다. 커다란 그 집의 한 쪽 벽에는 놀랍게도 이전 주인이 패닉룸을 만들어놓았었다. "신기하군. 이런 곳이 다 있다니..." 그런데 그날밤 이 집에 강도가 침입한다. 아직 빈집일 것이라고 생각한 3인조 강도들이.... 그들은 이집 구조에 대해서 훤하고, 그 패닉룸 어딘가에 엄청난 돈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조디 포스터와 어린 딸은 곤히 자다가 이 갑작스런 침입자를 피해 패닉룸으로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근다. 이제 패닉 룸을 둘러싸고 숨막히는 대결이 펼쳐진다. 우와.. 과연 어떻게 될까.

영화는 무척 재밌다. 와이프는 일단 <양들의 침묵>의 조디 포스터가 출연하니 재미있을 것이다 기대했고, 나는 <세븐>, <파이터클럽>의 데이비드 핀쳐가 감독을 맡았기에 괜찮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왠걸 중후한 흑인배우 포레스트 휘태커도 나오지 않는가. 영화는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 영화에 대한 듀나의 리뷰를 보니 이 영화가 <나홀로 집에>+<어두워질 때까지>+<다이하드>라고 했다. 정말 딱 그렇다. 영화는 무대포 강도에 유린당하는 가정의 평화를 기막히게 구현해낸다. 영화는 때때로 폭소를 터뜨릴만큼 관객의 긴장도를 농락한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잔인해지는 악당과 더욱 처절해지는 피해자의 대결구도가 펼쳐진다. 양측은 모두 '맥가이버'가 되어 패닉룸을 뚫거나 그걸 막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한다. 아마도, 미국의 안방(뉴욕 쌍둥이빌딩!)에서 벌어진 뜻밖의 공격에 망연자실한 미국인에게는 이러한 외부의 침입에 대한 내부의 반응이 흥미로울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한 가지가 이야기거리로 남는다. 조디 포스터의 딸 사라에 대해서다. 영화 중반.. 조디 포스터가 "내 딸..."할때서야 나는 "뭐야? 여자?"였었다. 와이프는 처음부터 여자앤줄 알았다고 한다. 뭐, 그 꼬마애가 남자냐 여자냐가 중요한 것을 아니지만.. <터미네이터2>에 나왔던 에드워드 펄롱 이후 가장 인상적인 아이 역이었던 것 같다. 이름이 크리스턴 스튜어트(Kristen Stewart)이란다.


물론, 데이비드 핀쳐 감독은 매 작품마다 언제나 엄청난 기대를 모았고, 매 작품마다 엄청난 평가를 받아왔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선 언제나 "아이고, 조금만 더..."라는 아쉬움을 남겼었다. 이 작품은 완벽할만큼 메이저 영화사의 입맛에 100% 맞춘 오락물이다. 히치콕 사후 가장 히치콕다운 영화를 만든 것이다. 그래서 아마 이 영화 오프닝 씬에서 올라가는 멋진 크레딧 디자인을 히치콕의 <북북서로 진로를 바꿔라>와 비교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참,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면 <스터 오브 에코>도 보시길. <식스 센스>때문에 재미를 못 본 영화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꽤 흥미진진했던 영화같다. 그 영화의 감독 데이비드 코엡이 이 영화의 각본을 맡았다. 이 사람 <미션 임파서블(1편)>에서 <스파이더 맨>까지 영화를 재미있게 만드는데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물론 원작이 따로 있는 <스터 오브 에코>지만 그 영화에서도 <패닉 룸>에서 보여주는 마지막 숨막히는 집안 대결구도가 펼쳐진다.

<패닉 룸>을 보고 나서 우리집에도 이런 거 준비해 둘까 생각해봤지만 집이 너무 좁다는 것을 알았다... --;  (박재환 2002/6/19)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