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피] 궁극의 사랑은 자기희생 (진가상 감독 畵皮 Painted Skin, 2008)

2008. 10. 30. 13:22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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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중국영화가 한 편 개봉되었다. <화피>(畵皮)라는 작품이다. 감독은 홍콩의 진가상 감독이지만 주요 출연진과 제작 스태프의 면면으로 보자면 확실히 중국영화이다. 이 영화는 중국에서 지난 달 26일 개봉되어 중국 최대국경일이라고 할 수 있는 10월 1일 건국기념일 황금주간을 거치면서 최근까지 2억 위엔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중국 언론은 국경일 개봉영화 중에서는 최고의 흥행수익을 올린 자국영화가 되었다면서 한껏 흥이 올라있다.

청대 문인이 엮은 귀신이야기 <요재지의>

  송 멸망시기에 태어난 포송령(蒲松齡)은 그저 그런 삶을 살다가 불운한 중국문인 중의 한 사람이다. 부친 대(代)에 이르러 집안은 완전히 영락([零落)하고 뛰어난 문재를 가졌지만 번번이 과거에 실패하여 죽을 때까지 남의 집 서당 선생이나 명문세가의 문객으로 일생을 보낸 인물이다. 그가 쓴 문집 <<요재지의>>(聊齋志異)는 중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500여 편의 단편들을 엮은 <요재지의>는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각종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믿기지 않는 기이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전설의 고향> 스타일이다. 다루는 소재는 다양하다. 부부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에서 한을 품고 죽은 귀신, 부패한 관아에 대한 원망, 천상과 지상을 넘나드는 기이한 경험담 등이다. <요재지의>에 포함된 이야기들은 중화권에서 곧잘 영화로 만들어졌다. 장국영-왕조현의 <천녀유혼>과 호금전의 <협녀>도 <요재지의>의 짤막한 단편을 바탕으로 했다. 이번 <화피>도 <요재지의>에 나오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다.

화피, 사람 껍질을 뒤집어쓴 요괴

   영화보다 먼저 소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태원(太原)현에 사는 서생 왕생은 어느 날 길을 가다 열네댓 살 되는 소녀를 집으로 데려온다. 그 여자의 말로는 부잣집에 팔려갔다가 본부인의 매에 못 이겨 도망쳐 나오는 길이란다. 왕생은 여자를 불쌍히 여겨 집으로 데려왔고 곧 ‘잠자리를 같이한다’. 알고 보니 이 여자는 요괴. 저자거리의 도사가 경고를 줬지만 왕생은 한귀로 흘러들었다가 요괴에게 심장이 파 먹혀 죽는다. 왕생의 처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결국 도사의 조언대로 한 걸인의 가래침을 꿀꺽 삼켜서는 남편의 심장을 되살려낸다.

  소설은 1,600자 남짓에 불과하다. 몇 년 전 국내에 완간된 <요재지의> 책에서는 9페이지분량이다. 중국문어체 고전소설답게 짧은 글의 간략한 내용이지만 독자는 금세 그 으스스한 분위기와 묘한 공포심, 그리고 애틋한 이야기 진행에 빨려들고 단순하지만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된다.

   최근 질적으로, 양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영화계는 한동안 대작무협물에 올인하더니 이제는 다양한 장르를 만들고 있다. 그중 이런 공포물은 뜻밖이다. 물론  최근 들어 중국에서도 공포물은 꾸준히 만들어지긴 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중국이 공산화된 뒤 지난 반백년동안 이른바 ‘귀신영화’는 김용의 무협소설과 함께 중국에서는 금지된 대중문화의 한 장르였다. 그렇지만 홍콩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중화민족의 특성상 ‘귀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문화유산인 셈이다. 어찌 보면 <화피>는 중국엔 뒤늦게 찾아온 그들의 대표적 콘텐츠인 셈이다.

소설에서 영화로

   <화피>의 진가상 감독은 전형적인 홍콩의 액션감독이다. 특별히 좋았던 작품은 뾰족이 생각나지 않는 그런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어온 사람이다. 그런데 중국영화사는 중국영화감독이 아니라 그런대로 홍콩스타일을 아는 진가상에게 메가폰을 맡겼고 나름대로 균형 잡힌 판타지 멜로드라마를 완성시킨다.

   이 영화의 최고 미덕은 영화를 공포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판타지 멜로물,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요재지의> 때문에 호러로 알았다거나, 견자단 때문에 액션물을 기대했을 팬에게는 불만이겠지만 말이다.

    짧은 소설을 100분 남짓의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야기에 살을 더 붙이고 관객을 사로잡을 비주얼을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원작에 나오는 왕생과 처, 요귀, 그리고 몇몇 단역들로는 21세기에 어울리는 화려한 이야기를 꾸릴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많은 캐릭터를 새로이 만들어낸다. 왕생과 왕생의 처(패용), 그리고 요귀(소유). 이들은 기본적으로 삼각관계를 형성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 많은 인물을 첨가하여 더 많은 인연과 갈등, 인적관계를 엮어낸다. 왕생의 처 패용을 사랑했던 방용. 요귀를 쫓는 퇴마사 하빙. 요귀를 짝사랑하는 또 다른 요귀 소이. 기본적으로 6명의 ‘인간과 요귀’는 이룰 수 없는 사랑과 갈망에 어찌할 줄 몰라 한다.

기본적인 플롯으로 엮은 애달픈 러브스토리는 이렇다.

   왕생은 전쟁터에서 소유를 구해내어 집으로 데려온다. 평화롭던 성내에는 인간의 심장을 파먹는 요귀가 출몰한다. 패용은 소유가 요귀라는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남편 왕생이 소유에게 치명적으로 이끌리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소유는 마치 자신의 호위무사라도 되는 듯 은밀히 따라다니는 소이가 가져오는 인간의 심장을 먹으며 연명한다. 요귀를 잡기 위해 퇴마사 하빙이 등장하고 갑자기 전쟁터를 떠났던 장군 방용이 왕생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방용과 패용은 한때 사랑했던 사이. 하지만 지금은 우정과 애정 사이의 고뇌를 뒤로 하고 요귀 퇴치에 주의를 기울인다.

   영화의 결말은 정말 극적이다. 많은 인물과 사건을 ‘숭고한 사랑’이라는 초점에 맞춰 한꺼번에 풀어헤치고 한꺼번에 수렴시킨다.

   패용은 요귀 소유가 자신의 남편 왕생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런 결단을 내린다. “정말 사랑한다면 다른 사람을 해치지 말아 달라.” 그리고는 독약을 마시고는 자신이 “요괴였다”고 말하며 최후를 준비한다.

   왕생은 일시 소유에게 마음을 빼앗긴 듯하지만 결코 아내를 저버릴 수가 없다. 아내가 요괴였더라도 함께 삶을 마감하겠노라고 칼을 빼어든다.

   방용은 요괴를 죽이기 위해 퇴마사의 피를 묻힌 칼을 휘두른다. 퇴마사는 요괴를 죽이기 위해 방용과 요괴를 한꺼번에 찔러야하는 운명적 선택을 하게 된다.

   소이는 소유에게 절규한다. “널 사랑했어. 넌 내가 가져다주는 사람의 심장을 먹어야만 살 수 있어.”

   이룰 수 없는 사랑. 그것도 인간과 귀신의 사랑은 서로에게 죽음을 요구하며, 그들은 각자 모두 자신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이야기 구조는 판타스틱 러브 스토리의 최정점에 서 있는 셈이다. 관객들은 그들의 선택에 야유를 보낼 수는 없을 것이고 그 선택의 지고지순함에 전율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이 영화에는 중국의 톱스타가 대거 등장한다. 요귀 역에는 주신이, 남편의 사랑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패용 역에는 조미가 등장한다. 조미는 이번 연기로 지난 10년간 끈질기게 따라다니던 <황제의 딸>의 ‘소연자’ 이미지를 확실히 벗어던진다. 우유부단한 것 같으면서도 결국은 진실한 사랑의 한복판에서 고뇌했던 왕생 역에는 ‘진곤’이 열연한다. 진곤은 중화권에서 꽤 인기 있는 배우이다. 얼핏 보면 천녀유혼의 장국영과 슬픈 눈빛의 양조위의 연기특성을 동시에 쏟아놓는 것 같다. 타고난 액션스타 견자단은 이 영화에서 액션보다는 연기를, 특히 코믹 연기를 간간히 보여줘서 의외였다.
 
   이 영화 마지막 엔딩 송은 중국의 장정영(장징잉)이 불렀다. 몇 해 전 중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신인발굴 TV 쇼 프로그램인 ‘챠오쥐뉘성'(超級女聲) 출신의 장정영은 이미 풍소강의 <야연>과 <포비든 킹덤>의 주제가를 불러 그 풍성한 감성과 뛰어난 음색을 선보였었다.

 


  <사랑과 영혼>이나 태국 호러물, 혹은 한국 학원호러물에 익숙한 한국관객에게는 어설픈 와이어 액션만큼이나 구닥다리 아날로그 판타지 드라마겠지만 스토리텔링에서는 꽤나 감동적인 중국영화이다.

사족. ‘화피’는 요괴가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인간의 피부(살 껍질)에 예쁜 여자 모습을 그려 뒤집어쓰는 것을 말한다. 소설에선 한 줄로 표현되고 영화에서는 당연히 특수효과로 충격을 준다. (박재환 2008-10-30) 

 

 

 

画皮(2008年陈嘉上执导电影)_百度百科

出品人 云晖翔、杨洪涛、任仲伦、蓝凯莎玲、王若军、王彪霞、刘光伟、魏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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