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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리뷰

[리뷰] 제보자, 믿고 싶은 것과 보고 싶은 것

박재환입니다. KBS미디어★박재환 2014.10.27 10:12

 

 

지난 2005년, 노무현 대통령 재임기간에 한국을 발칵 뒤집은 사건이 하나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들 지금도 씁쓸하게 생각할 ‘황우석스캔들’이다. 1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그 사건이 남긴 생채기는 크다. 적어도 한때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함께 한국인의 위상을 세계에 떨칠 위대한 과학자로 여겼던 인물이니 말이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대한 과학적 성과’와 ‘그 과정에서의 사소한 실수’ 사이에서의 평균적 가치평가를 내릴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우중(愚衆)과 결합한 미디어의 오발탄들 속에서 몇몇 언론(MBC ‘피디수첩’ 같은)에 의해 이 이야기는 급격하게 ‘과학적 진실’과 ‘과학자의 양심’으로 이동했다. 남은 것은 영웅 만들기에 골몰했던 그 당시 많은 언론과 그에 장단을 맞춘 국민들에 의해 정체가 드러난 초라한 대한민국의 언론상이었다. 지난 주 황우석 사태의 본말을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한 영화 ‘제보자’가 개봉되었다. 물론 영화적 재미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다보니 과학자와 언론인, 그리고 성난 국민의 겉모습만 투영된 면이 없지 않지만 충분히 흥미롭고 볼 가치가 있는 영화이다.  

 

줄기세포 조작스캔들의 진상  

 

한국대학교 이장환 교수(이경영)는 국민적 영웅이었다. 휠체어에를 탄 어린이의 초롱초롱한 희망과 기대의 눈빛이 관객의 이성적 판단을 가로막으며 이장환 교수의 허황된 언플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장환 교수는 마치 신앙간증이라도 하듯이 대중을 향해 “줄기세포연구는 난치병 환장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떠든다. 청중은 환호하고, 장관은 열정적으로 박수를 보낸다. 국민들은 그의 연구성과를 믿고 기대한다. 대한민국은 국정원까지 나서서 그를 보호하고 그의 연구를 돕는다. 그런데 어느 날 방송사 ‘PD추적’ 윤민철 피디(박해일)는 뜻밖의 제보를 받는다. “줄기세포 연구는 가짜”라는 것. 시사탐사PD의 촉을 건드리는 제보지만 그 뒷말이 그의 취재욕구를 자극한다. “그런데.... 증거는 하나도 없어요.” 제보자는 이장환 박사와 함께 줄기세포 연구를 해오던 심민호 팀장(유연석)이다. 이제부터 진실과 국익의 중간에서 언론인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이장환 박사 뒤에는 정부, 국가, 국민이 있다. 물론 수호전사를 자임한 ‘언론’이 든든한 벽을 이루고 있었다. 윤 피디는 거대한 벽을 상대로 이성과 국익, 그리고 진실의 싸움을 펼치게 된다. 과연, 줄기세포는 있는가. 국민은 이 방송을 믿을 것인가. 국민적 열망이라는 신드롬에 사로잡힌 환상 속 영웅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기자(피디)의 길, 과학자의 길 

 

영화 ‘제보자’는 대한민국 전체를 충격으로 몬 ‘황우석신드롬’을 PD 관점에서 극화한 드라마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불치병환자 가족이 일선에 서 있고, 그 뒤에는 ‘세계최초’ ‘노벨상 예약’ 같은 애국애족에 불타는 신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고 있는 가운데 방송쟁이의 투혼을 다룬 영화이다. 국민들은 진실이라고 믿은 줄기세포에 연연하며 그 희망의 거품이 꺼지는 것이 두려워한다.  

 

A.J.크로닌의 소설 ‘천국의 열쇠’에서는 성령에 깃든 한 소녀이야기가 등장한다. 시골마을의 소녀가 어느 날 성모마리아를 만났고 그 이후 종교적 열정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문제없다는 소문이 난 것이다. 모두가 이 소녀를 성녀마리아오의 환생으로 떠받든다. 그런데, 사실은 이 소녀는 매일 밤 몰래 허겁지겁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힘든 세상일수록, 사람들은 기적을 믿고 싶은 것이다. 황우석신드롬은 거의 종교적인 추앙에 가까웠다. 그런 성스러운 분위기에 더하여 “과학은 국경이 없어도, 과학자에게는 국가가 있다.”같은 레토릭이 2005년을 뜨겁게 달군 것이었다. 물론, 황우석 교수와 그가 믿었던 연구방식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단기성과 위주에 목마른 한국’임을 염두에 둔다면 장기적으로 그의 연구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 동안만은 우리 국민들에겐 진정한 ‘과학자의 길’이 어떠해야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한 사건이다.

 

거대권력에 맞서는 언론인의 모습을 다룬 영화중에는 미국 워터게이터를 다룬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란 영화가 있었다. 워싱턴포스터의 두 민완기자가 팩트체크를 할 때 사용한 수법이 엄격한 의미에서는 올바른 취재방식이 아니라는 논란이 있다. 취재윤리를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논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탐사프로그램에서는 항상 나오는 몰래카메라방식의 촬영과 인터뷰 상대를 윽박지르는 스타일의 취재관행은 이 소동의 뒤안길에서 방송쟁이와 기자들이 감수해야할 고행임에는 분명하다.

 

사실 영화에서는 제보를 받는 순간부터 윤 피디는 ‘방송여부’에 대해서만 고민한다. ‘진실이 우선인지 국익이 우선인지’하는 그럴듯한 철학적 질문을 내던지지만 말이다. 그것이 ‘진실에 바탕을 둔 정의감의 발현’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한번쯤은 국익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과학자의 노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지녀야할 듯하다. ‘제보자’ 아니 ‘황우석스캔들’이 터뜨린 대한민국의 문제는 황우석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니 말이다. 물론 그런 성찰과 사유의 시간은 방송사 피디든, 과학부 기자든, 영화 ‘제보자’ 관객이든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제보자'를 보고 당시 정치인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인터넷 찾아보니 바로 나온다. 두 개만 옮겨보면 이렇다. 이게 2005년 당시의 대한민국 정서였다.

 

노무현: “나도 MBC ‘PD수첩’의 이 보도가 짜증스럽다”
박근혜: “우리 나라의 보배 중 보배인데 편찮으면 안 된다”

 

(박재환, 201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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