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블랑카] 다시 한번..

2008. 2. 19. 20:50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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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d by 박재환 1999-3-4]
 
   오래 전에 Bertie Higgins란 가수가 '카사블랑카'란 노래를 불렀었다. 우리나라엔 최헌이 번안해서 불렀던 것 같다. 영화가 얼마나 감상적이었으면 그렇게 팝송으로까지 되살아났을까.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가고, "애즈 타임 고즈 바이" 해도, 원래 영화가 가지고 있었던 그 매력은 고스란히 아버지 세대에서 아들 세대로 전수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사랑과 애국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는 아주 심각한 주제의 너무나 단순한 러브스토리의, 아주 돈 적게 들인 영화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연 배우들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 흑백은 첨단과학으로 칼라로까지 되살아났지만, 그 은은한 음악 뒤에서 분주하게 삶과 생존을 모색하던 모로코의 한 작은 마을, 그 카페의 그 추억은 영원히 포스터에서 살아남듯 영화팬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격화되면서,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연합군과 독일군의 전쟁은 영화 <패턴 대전차군단>보면 알 수 있다. 유럽은 이미, 히틀러가 다 휩쓸었고, 프랑스 파리에까지 독일군이 점령해 들어갔다. 그래서 프랑스의 독립을 추구하는 자들이 지하운동-레지스탕스 운동-에 뛰어들었다. 자유프랑스는 이제 괴뢰정권 비시정권의 치하가 된다. 저 멀리 아프리카 모로코의 프랑스령 카사블랑카는 그러한 국제 정세에 기반을 둔, 전형적인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독립투사들, 사기꾼, 밀수꾼, 비자발급으로 돈 버는 경찰서장, 공명심에 불타는 독일장교, 유럽에 진저머리가 나서 미국으로 떠나가려는 많은 사람들. 그러기 위해 거쳐야하는 포르투칼 리스본행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모두들 카사블랑카에서 북적거린다. 하지만, 비자도, 티켓도, 출입증도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려야만 손에 쥘 수 있는 천금같은 것. 여기에 <Rick's Cafe Americain>라는 카페가 있었으니, 미스테리 인물 릭이 운영하는 술집이다. 물론, 영화의 매력을 위해선 그의 존재를 끝까지, 어느 정도까지 신비와 매력에 휩싸여있게 만들어야 했었지만, 영화는 그러한 피곤한 기다림을 일치감치 포기하고, 시작하자마자 그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해준다. 그가 여자들에겐 알 수 없는 매력의 남자로 보이기도 하고, 사업수완으로 봐선 매우 차갑고, 이성적인 사람이란 것이다. 한때는 이디오피아나 스페인 같은 곳에서 혁명아로 활약한 적이 있었고, 그러다가 고향 미국으로 돌아가기를 포기하고 카사블랑카에 남아서 낯선 존재와 뒤죽박죽된 인종, 국적인들과 부대끼며 사는 것이다. 누가 보아도 그는 과거의 로멘스를 철저히 잊으려하는 사람이다.

이 영화에는 화려한 연기진들이 영화의 장면장면을 빛낸다. 험프리 보가트. 이젠 한국 영화팬들에겐 아주 낯선 사람이 되어 버린 헐리우드 올드스타의 한 사람이다.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브래드 피트 같은, 그리고 우리세대의 해리슨 포드 같은... 내가 이 사람의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아마 영화평론가 정영일씨 살아있을때 본 명화극장의 어떤 흑백필름이었을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필사의 도망자>란 영화에서의 탈옥수였다. 그는 언제나 깔끔하지 못하고, 여자에겐 퉁명스럽게 대하는 듯하면서도, 깊은 내면의 우수와 고독을 잘근잘근 씹는 것을 느낄수 있는 그러한 연기의 폭을 지닌 배우였다. <말타의 매>를 보니 그는 또한 왠지 굉장히 수다스러운 면이 있었다. 잉그리드 버그만. 참, 덩치(몸매)가 크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글래머라기보다는 전형적인 북구미인형 체구임을 알수 있다. 그나저나 요즘은 갑자기 모든 것이 복고풍이 되어가는 것 같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되살아나고 말이다.

암시장의 비자 거래꾼 유가트 역에는 Peter Lorre가 나오는데 얼마전 <말타의 매>에 나왔던 배우였는데 아주 인상 깊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며, 파워풀한 연기를 보여준 사람은 경찰서장 루이스 르놀트역의 Claude Rains이다. 그는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에서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괴로워하다가 마지막에 자살하겠다고 설쳐대던 상원의원으로 나왔었다. 르놀트 경찰서장은 애국과 애족을 구분할 줄 알고, 뇌물과 착복을 이해하며, 적과 아군을 두루 아우를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신념으로 이상한 마을 카사블랑카에서 그렇고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도박장을 눈감아 주고, 돈을 받고, 비자 발급을 미끼로 여자를 노리고, 독일장교와 프랑스 국민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위치와 카사블랑카의 안전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 마지막 장면에 가면, 그는 "VICHY WATER"라는 레이블의 생수를 마시고는 그 병을 쓰레기통에 쳐박아버리는 장면이 있다. 생수라면 에비앙 생수밖에 몰랐는데, 프랑스 오베르뉴주에 비시라는 온천마을이 있단다. 여기서 생산되는 생수(광천수)는 그 품질과 약효(?)가 세계적이란다. 이 비시라는 동네에 2차대전 말기에 독일의 괴뢰정권 비시정권이 수립되었었다. 그러니까, 이런 내막을 잘 모르더라도 릭이 비시 생수를 버리는 것은 무언가 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리라. 바로 그 뒤에 이어지는 장면은 르놀트 서장이 릭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안개 속으로 사라지며, 나누는 대사이다. "우리의 우정은 이제부터야"라는 말에 그가 언제부터였는지 애국자였고, 어느 순간부터였는지 릭을 이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이 영화가 순전히 이렇게 된 것은 각본이 워낙 뒤죽박죽인체 배우들에게 전해졌고, 결론을 알수 없는 상태에서 촬영이 진행되다보니 그런 식이었단다. 지금 저 사람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아마, 왕가위가 여기서 영화제작기법을 배운 모양이다)

영화를 보다보면 진정한 사랑의 승리를 지켜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멜로드라마의 전형적인 전개도 지겨울 정도로 많이 봤고 말이다. 이전에 사랑했었던 여자, 사랑했었다고 믿었던 여자, 사랑이 전부였던 여자,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여자, 갑자기 나타난 남자, 방황하고 갈등하는 남자, 이기주의와 과거에 얽매인 남자, 그리고 뜻밖의 대의명분. 애국애족, 자기희생, 우정, 국제정세와는 동떨어진 남자의 이야기... 등등.. 영화는 기본적으로 멜로물이다. 릭은 젊은시절, 이런 저런 일을 했을 것이고(그냥 대사에서만 알 수 있듯이 이디오피아와 스페인등에서 자유와 민주를 수호하기 위해 일했었단다. 하지만, 그런 회상 씬하나 없으니 얼마나 경제적인 영화만들기인가) 독일군이 파리에 점령해오기 바로 직전에 일자(잉그리드 버그만)을 만나서 짧은 순간이지만, 사랑을 나눈다. 독일이 내일 쳐들어오면, 당신의 정체가 밝혀지니, 우리 여길 떠나자. 하지만, 그 다음날 비는 내리고 북적대는 기차역에 끝내 그녀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한장의 편지만을 남긴 채... 이유는 묻지 마세요..라는..

그리고, 릭은 카사블랑카의 그 카페에서 도박장을 열고, 비자가 필요한사람, 돈이 필요한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대부가 되어, 혼탁한 세월이 그저 흘러가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런데 어느날, 홀에서 귀에 익은 피아노소리가 들려온다. 카페의 싱어, 흑인 피아니스트 샘이 "As Time Goes By"를 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기억해야 돼요
키스는 여전히 키스고
한숨은 단순히 한숨이죠
기본적인 것은 변함없어요
시간이 흐르고
두 연인이 구혼할 때
그들이 하는 말은 오직
사랑해요 뿐이죠
미래가 어떻게 될지라도
시간은 흘러가요

그 노래는 릭이 파리에서 일자와 사랑을 나눌때 즐겨듣던 노래였다. 감히 그걸 다시 회상시키다니. 릭은 순간, 피아노앞에서 오래 전 말없이 떠나간 그때 그 여인 일자를 보게 되는 것이다. 왜? 당신은 그때 나를 사랑 했잖아? 왜 떠나갔었지? 그리고 왜 다시 나타난거야....

하지만, 영화는 멜러물에서 독립투사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일자는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최고 지도자의 아내. 그들은 이곳을 떠나야한다. 하지만. 비자가 없다. 릭에게 부탁한다. 돈을 원하면 돈을 줄 것이다. 애원도 해보았지만, 협박도 하고, 총도 겨눠보았지만 릭은 냉소적인 모습으로 일자를 바라볼 뿐이다.

영화가 지지부진할 수 있는 각종 어설픈 설정이 곳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완벽한 탈출극, 혹은 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경찰서장역의 클레즈 랭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그는 프랑스령 모로코 카사블랑카의 경찰서장일 뿐이다. 그 당시 프랑스는 비시정권치하였다. 그는 프랑스국민일테지만, 프랑스국민이 아니다. 게다가 이곳은 이미 독일의 압력이 유효하고 말이다. 카페의 손님들은 모두 프랑스인이니까 말이다.

비씨정권은 독일군이 프랑스 파리를 접수하고 세운 괴뢰정권이다. 페텡 원수가 껍데기 프랑스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비시 정권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부정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시대 공무원-일반 면서기말고, 높은 사람들-들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처단한다거나, 이해한다거나. 뭐 그런 것은 전혀 없다. 우선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1910년부터 1945년사이의 대한민국에 대한 이해력은 유관순 말고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그리고, 유럽의 많은 연관 국가들은 이 당시의 일을 아직도 물고 늘어진다. 예를 들어, 파리에 살던 유태인이 어느 날, 아우슈비츠로 가서 죽었다 하자. 당시 비시정권의 내무상이 인구호구 조사, 국적담당을 맡았을테니, 비시정권이 그 사람의 학살을 방조차원이 아니라, 적극 협력했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당시의 조치에 대한 엄청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다. 비시정권이 괴뢰정권이지만, 그것은 엄연히 프랑스 정부였던 것이다. 그러니 프랑스정부로서는 별수 없다. 그리고, 최근 몇년동안은 이 시대에 대한 또다른 해석이 나온다. 비시정권이 있었기에 가능한 프랑스의 유지였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비시정권이라도 있었기에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뭐. 그딴 이야기는 여기서 관두고..... 우리나라 사람도 한번 쯤은 일제시대에 떵떵 거리고 잘 살던, 그러한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 봤음한다. 그 사람들은 해방 후에는 모두 이승만 밑에서 장관해먹었고, 박정희 밑에서는 떼돈 벌었다. 그래도 나 학교 다닐땐 대학생들이라면, 임종국 선생님의 책 정도는 (아무리 공부안하는 학생이라도) 책 표지정도는 구경이라도했는데 요즘은 그런 관심마저 없다. 이제 모두들 <러브레터>와 <엑스저팬>시디와 비디오만 찾고 있다. 물론, 전혀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그러니, 과거를 잊고 말고, 용서하고 말고가 아니다. 우리는 그런 사실조차 떠올리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다가 한일축구전만 열리면 그냥 복수심에 불타 죽여라 죽여라 그런다. 물론 보고 있는 텔레비젼은 소니TV이고 말이다. (음.. 내 카세트는 파나소닉이다...--;)

오늘 본 카사블랑카는 오즈에서 한 카사블랑카가 아니라, 지난 월요일 KBS 위성TV에서 보여준 영화입니다. 참, 그때 보여준 영화는 흑백이 아니라, 첨단과학으로 색채를 입힌 칼라 작품이었습니다. 칼라라서 그런지 감흥이 반감되었습니다. 이런 영화는 화면에 비가 칙칙 내리고, 음향은 툭툭 끊기고. 뭐 그래야 낭만적일텐데 말입니다. (박재환 1999/3/4)


Casablanca (1942)
감독: 마이클 커티즈 
출연: 잉그리드 버그먼, 험프리 보가트, 클라우드 레인스, 피터 로어  
1944년 아카데미 수상작 (작품, 감독, 각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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