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라 메 (양윤호 감독, 2000년)

2013. 1. 3. 11:12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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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라 메] 부산은 아직도 불타고 있는가

 

 

 

부산영화제가 열리면 언제나 인파로 가득 차는 부산 자갈치시장과 남포동 '영화의 거리' 인근에 부산시청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몇 해 전 그 자리에는 '롯데월드'가 터를 닦기 시작했고, 대신 화려하고 큰 시청건물이 연산동에 들어섰다. 지난 봄, 부산시 신(新)청사에서 <리베라 메>의 영화제작발표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는 부산영상위원회의 박광수 감독과 많은 영화인들이 자리했다. 물론 안상영 부산시장도 참석하였고, 정치가 출신답게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안 시장의 연설요지는 간단했다. "부산을 영화제의 도시에서 영상산업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리베라 메>가 아파트(비록 철거직전의 건물) 한 채와 종합병원(빈 건물) 하나를 불바다로 만들 동안, 차량통제는 물론이고 소방차 지원까지 아끼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이 영화는 분명 <싸이렌>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규모의 리얼리티'를 살릴 수 있었다.


영화촬영 전이나 영화가 촬영되는 동안 내내 일반 영화팬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최민수가 워낙 카리스마가 넘치는 배우인지라 나머지 배우들이 그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을까. 그리고, 어쩌면, 양윤호 감독마저도 최민수의 입김에 메가폰을 빼앗기지 않을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지켜보았다. 그런데, 영화는 <쉬리> 이후 처음으로 '대작영화'에서 찾을 수 있는 만족감을 선사한다.


 영화는 파이어액션블록버스터를 표방한 작품답게 '불'에 대해서는 관객들이 완벽한 호응을 보일만큼 잘 다루었다. 천장 닥트를 통해 번져가는 불과, 복도 유리창을 모조리 깨버리는 불길, 엘리베이터를 타고 폭발하듯 위로 치솟는 화염 등은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보았던 스펙터클을 제공해준다. 그것도 겨우(?) 40억 원으로 말이다.


영화포스터는 출연배우들을 나란히 병치시켜놓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확실히 최민수와 차승원의 양자 대결구도이다. 최민수의 카리스마에 도전하는 차승원의 사이코 연기는 결코 가볍지가 않다. 몇몇 사이코 영화, 혹은 편집광적 주인공을 다룬 영화에서 차용했음직한 차승원의 연기는 몇몇 장면에서 관객에게 섬뜩함을 전해줄 정도로 정확했다.


영화는 결국 한 사이코의 복수극이다. 영화는 차곡차곡 그 방화범의 어린 시절을 플래쉬백으로 보여주며, 마지막 순간에 화염과 함께 그 분노를 일깨워준다. 비록, 너무 많은 주연급 배우들과 너무 장엄한 불놀이로 가려져버린 느낌이 있지만, 이러한 드라마 구조는 충분히 멋있고 매력을 끌만한 소재이다. 그리고, 조금은 진부하지만-그리고 분명 허술하게 다루어진 부분이기도 하지만- 정신병적 방화범과 그 보호감찰의 의무를 진 여의사를 등장시켜 <양들의 침묵>에서 볼 수 있는 심리대결의 구도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그리고, 전혀 뜻밖에 양윤호 감독은 그 여의사마저 불구덩이에 던져버릴 만큼 화끈한 '불'과의 사투를 우선한다. 그 덕분에 관객은 방화범의 방화 동기에 대해 더욱 객관적이며 현실적으로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여의사역의 '정애리'만큼 이 영화에서 '불'의 조역, 최민수-차승원의 들러리였던 배우가 '김규리'이다. <쉬리>이후 우리나라 영화 흥행의 공식이었던 '멜로'드라마적 요소는 분명 '김규리'에게서 찾아볼 수 있었겠지만 양 감독은 이것마저 후면으로 배치시키더니, 어느 순간부터 멜로자체를 연소시켜버린다. 감독은 그야말로 '남성영화'로 이 영화를 밀어붙일 요량인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물론 소방관 최민수와 방화범 차승원의 맞대결이다. 영화초반 아파트 화재장면에서 관객들은 이 영화에 '허준호'가 어떻게든 출연했음을 짐작하게 된다. 소방수 허준호의 죽음은 최민수에게 크나큰 동기 부여가 되며, 나머지 소방수에게는 굴레가 된다. 유지태처럼 "불에 타죽기는 싫어!"라고 절규하듯이 말이다. 동료의 죽음은 이들 소방수에게 개인적 드라마를 강화시킨다. 물론, 최민수와 김규리의 관계는 멜로에서 벗어나면서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사라져버리는 것이 흠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서 최고로 관객의 누선을 자극하는 것은 '박상면'의 캐럭터이다. 쌍둥이 딸과 함께 오랜만에 외식을 나간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메뉴판을 보더니(관객들은 일반적으로 소방수를 '박봉'으로 이해한다) "우리 쌍둥이 뭘 먹고 싶니?" "그래. 탕수육 먹으러 가자."라고 나온다. 그런 자상하고 가난한(--;) 소방수 아빠는 비번 날임에도 화재현장에 뛰어들어 화염 속에서 마지막까지 소방수를 비난했던 시민들을 구하고 장렬하게 죽는다. '뜨거운' 그의 시신이 앰블런스에 실려 나갈 때 관객들은 한 일본 영화를 떠올린다. <춤추는 대수사선> 라스트 씬에서 왜 유치하리만큼 많은 경찰들이 줄을 서서 오다 유지에게 거수경례를 보내는지 의아해했지만, 우리 영화에서야 그 이유를 깨닫는 것이다. 감정이입과 직업의 존귀함에 대한 인식인 것이다.


<타워링>의 스티브 맥퀸을 보고 소방수가 꿈이었던 사람이 있었다. <긴급구조 119>를 보고 새로운 영웅상을 키우는 요즘, <리베라 메>를 보고 소방수의 애환을 느끼는 시간이 된다면야 이런 영화를 충분히 감상할 이유가 되지 않을까. 어쨌든 부산의 영화사랑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박재환 200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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