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웨이] 강제규의 만국기 휘날리며

2011. 12. 21. 14:18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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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 감독의 <마이 웨이>가 오늘 개봉된다. 지난 주 기자시사회를 통해 엄청난 전쟁 씬을 선보이며 이 영화에 대한 기대심을 한껏 높여놓았다. 순제작비만 280억 원이 투입되었으니 역대 한국영화사상 최고의 제작비 영화로 기록된다. 영화는 손기정의 베를린 마라톤 이야기로 시작하여, 수많은 전쟁을 거치면서 생사의 순간을 같이한 조선인과 일본인의 기구한 역정을 담고 있다. 강제규가 이루어 놓은 또 한 번의 기적 같은 영화를 살펴보자. (스포일러 경고: 자세한 내용이 포함되었으니 영화를 보신 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일장기 휘날리며


영화는 일제강점기의 서울이다. 일제치하에 신음하던 조선인민들은 저 멀리 베를린에서 들려온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제패 순간과 일장기 말소사건을 다 알고 있다. 조선 사람은 적어도 일본사람들보다 더 튼튼한 다리와 이기고 말겠다는 정신력을 가진 것이다. 그런 시절에 서울(경성)의 한 일본인 호화저택에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일본인의 청지기(천호진)의 아들 김준식은 나름 동네의 소문난 뜀박질 선수이다. 그런데 막 일본에서 건너온 ‘도련님’ 하세가와 타츠오는 동경에서 날리던 달리기 선수이다. 둘은 첫 만남부터 경쟁의식을 느끼고  시합을 펼친다. 준식과 하세가와가 경성시내를 마구잡이로 달려가면서 이 영화는 향후 수년에 걸쳐 한반도와 중국대륙과 유럽 전선을 뛰어갈 두 남자의 운명을 숨 가쁘게 담기 시작한다. 준식은 경성시내를 질주하는 인력거꾼으로, 하세가와는 일본의 영광을 빛낼 마라톤 선수로 성장한다. 그리고 세계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대표를 뽑는 대회가 열린다. 조선인 준식과 일본인 하세가와가 열전을 펼치더니 결국 준식이 승리한다. 하지만 일본의 영광을 기대하는 주최 측의 농간으로 준식은 폭동주도자로 체포되고 우승의 영광은 하세가와의 차지가 된다. 재판에 넘겨진 준식은 황군으로 징집된다. 조선인 김준식은 마라토너의 꿈을 멀리하고 이제 일장기를 휘날리며 중국대륙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과의 전투를 펼친다.


오성홍기 휘날리며




일본 관동군이 된 김준식이 치른 첫 번째 전쟁은 우리에겐 다소 낯선 노몬한 전투(諾門罕戰役)이다. 1937년 7월 중국은 노구교사건을 일으켜 중국을 침략해 들어갔고 북쪽으로 몽골과 소련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시점, 그 지점에서 역사적인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노몬한은 당시 중국의 괴뢰국가였던 만주와 몽골, 소련의 접경지역에 위치한 도시이다.  1939년 여름에 발생한 양측 간의 국경 충돌도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했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 장면에서 뜻밖의 전사가 등장한다. 일본군을 당황하게 만든 것은 어디선가 날아오는 스나이퍼의 총격이다. 일본군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진다. 이 때 김준식은 준족과 생존본능으로 저격수를 사로잡는다. 잡고 보니 중국인 쉬라이(판빙빙)였다. 절대 열세의 이 전선에 새로운 일본 지휘관이 부임한다. 전쟁의 광기와 황국신민의 영예는 잠시 잊고 베를린으로 의학공부를 떠나라는 부친의 권고를 거부하고 호기롭게 죽겠다며 전장에 나선 하세가와. 하세가와 대좌는 절대적 약세를 극복하기 위해 가미가제식 자살특공대를 조직한다. 황군의 병사로 영예롭게 죽을 일본군뿐만 아니라 김준식과 조선 징용병들도 포함된다. 엄청난 소련군의 ’땅크‘가 몰려오고 지축을 뒤흔드는 포격전 속에 김준식도, 하세가와도 저만치 굴러 떨어진다.


소련기 휘날리며



이제 이들은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기차에 실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혹한의 시베리아’ 같은 포로수용소로 옮겨진다. 소련군의 전쟁포로 신세이니 일본군이었든 조선 징용군이었든 의미가 없다. 그들은 포로 신분에서 살아남기 위해 혹한의 추위 속에서 벌목작업에 나서야한다. 여기서 관객은 잠깐 정말 모진 조선인의 얼굴을 만나게 된다. 탁월한 생존감각을 가진 준식의 친구 이종대(김인권)는 어느새 완장 찬 ‘안똔’이 되어 수용소내의 질서를 책임지게 된다. 그 춥고 배고픈 포로수용소에서 준식과 하세가와는 각각 조선인과 일본인의 명예를 걸고 목숨을 건 육박전을 펼친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은 서부전선에서 격화되고 이들 포로에게 또 하나의 운명이 굴러온다. 포로수용소에서 목매달려 죽든지 소련군복을 입고 최전선으로 끌려가서 독일군에 맞서 싸워야하는 것이다. 영화  <마이웨이>에서 가장 공들인 전투씬은 아마 이 장면일 것 같다. <에너미 엣 더 게이트>나 <피아니스트>(로만 폴란스키ㅣ 감독,2002)에서 본 듯한 장엄한 시가전이 펼쳐진다. 지루하게 계속된 포격전으로 도심의 모든 건물은 무너져 내렸고 한쪽에서부터  붉은 깃발을 휘두르면 갓 투입된 소련군복의 포로들이 맹목적으로 전진 돌격한다. 그러면 저 앞과 저 옆 어디선가에서 기관총으로 무장한 독일군이 집중소사를 퍼붓는다. 소련군복을 입은 포로들이 뒤돌아 도망치려면 그 뒤에는 소련장교가 권총을 들고 무조건 처단한다. 이 장면은 이제 전설이 된 이야기이다. 영화에서는 이 전투를 ‘제도프스크 전투’라고 명명했는데 2차 대전의 독소공방전에 등장하지 않는 지명이다. 영화는 아마도 1942년 여름부터 시작된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을 전후한 치열한 전투를 형상화한 모양이다.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의 경우 반년 가까이 지속되며 양측에서 200만 명 이상이 희생된 끔직한 전쟁이었다. 강추위와 배고픔 등 최악의 전쟁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당시의 많은 전투에서 소련군은 이런 방어방식을 이용했다. 중공군의 인해전술 이전에 이미 소련군은 끝없는 ‘신병 투입’으로 독일군의 총알을 소진시키는 전술을 쓴 것이다. 그리고 최근 드러난 기록에 의하면 당시 소련군의 많은 수가 독일군 복장을 입고 싸웠을 만큼 군수지원도 끔찍했다.(조선인이 일본군에 끌려가서 소련군 포로가 되어 독일군복을 보급 받아 독일군의 총알받이가 된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나치기 휘날리며


그렇게 둘은 이제 독일 나치군에 남게 된다. 흐르는 시간, 전쟁의 참화 속에서 유니폼(군복)과 소속이 몇 차례 바뀌었지만 그들은 살아남았고 이제 해안초소에서 생존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런데 이곳은 노르망디. 어찌 기구하다고 하지 않으리오. 적에서 동지가 된 준식과 하세가와는 해안초소를 빠져나가 저 멀리 조국까지 뛰어가기로 약속한다. 그런데 그 날 새벽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연합군 전투기의 등장과 함께 해안에는 끝없이 적들이 몰려온다. <라이언 일병구하기>를 뛰어넘는 엄청난 화력전이 펼쳐진다. 애당초 그들과는 없었던 전투,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총을 들어야하는 기막힌 운명. 김준식과 하세가와 타츠오는 는 어느새 조선인/일본인이라는 관념보다는, 전쟁에서 체득한 기이한 전우애로 마지막 전쟁을 치르게 된다.


태극기 휘날리며


강제규 감독은 충무로에서 잔뼈가 굵은 영화인이다. 영화팬들은 그가 <은행나무침대>(96)로 척박한 한국영화계의 CG세상에 선구자가 되었고, <쉬리>(98)로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창조했으며, <태극기 휘날리며>(03)로 충무로 제왕에 등극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블록버스터 감독으로만 그를 안다면 오해다. 그도 충무로에서 오랜 기간 숙성된 영화인이다. 학교성적의 중압감에 학생이 자살하는 이야기가 담긴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90)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야당후보의 암살을 다룬 정치드라마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91) 등의 시나리오 작업을 했었다. 이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강수연과 이보희가 출연한 불륜과 대반전의 드라마 <장미의 나날>(94)도 강제규 시나리오이다. 강제규는 <태극기 휘날리며>를 거치면서 확실히 한국 땅이 좁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그는 글로벌한 규모의 영화를 기획했고 목표를 향해 묵묵히 달려간 것이다. 아시아에서 통하는 새로운 흥행모델을 개척한 것이다. 그것은 일본과 중국의 톱스타를 캐스팅하여 다국적 프로젝트의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 아니 정확히는 아시아의 영화시장에서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어야할 것이다.


영화 속에서 중국 저격수로 등장하는 판빙빙이 한국에서는 단역으로만 받아들여지겠지만 중국 영화시장에서는 의미가 다르다. 단 한 장면이라도 자국 톱스타가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 주연급으로 대접 받는다. 흥미로웠던 사실은 인해전술 중공군을 다룰 줄 알았는데 오성홍기를 휘날리는 사람은 판빙빙 달랑 한 사람뿐이었다는 사실! 강제규는 현명하고, 효율적으로 시나리오를 썼고 캐릭터를 배치한 것이다.


영화는 손기정 마라톤이 대표하는 한국과 일본의 민족감정의 분출에서 출발했지만 그 전개과정은 생존본능의 액션이었으며 대미는 감동의 휴머니즘이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는 강제규의 탁월한 시나리오 능력을 보여준다. 누군가 한 사람만이 살아야할 경우 누가 살아야하고, 그 이후 어떻게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 하는지 가장 멋진 전범을 보여준다. 관객은 두 주인공과 함께 달려왔고 마지막까지 같이 달려가는 순간을 목도하게 된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 영화의 모티브는 사진 한 장과 TV다큐멘터리에서 시작되었다. 노르망디 전투가 끝나고 촬영된 단 한 장의 사진. 연합군의 포로가 된 나치 사병의 사진이다. 영어도 독일어도 모르는 이 남자. 조선에서 끌려온 기구한 운명의 남자이야기이다.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엄청나게 많은 사연과 이야기가 잉태되었다. 가까이는 위안부 이야기부터 저 멀리 노르망디의 조선인 나치병사까지. 그러고 보면 콘텐츠란 것은 발굴하고 개발하기 나름인 것 같다. 그동안 내부에서 우리끼리 이야기하는 것에 신경을 썼다면 앞으론 더 세련되게 글로벌하게 꾸며가는 능력을 키워야할 것이다. <마이 웨이>는  우리 충무로의, 우리 영화팬들의 지평을 1백 광년은 족히 확장시킨 의미 있는 작품인 것이다.  (박재환, 2011.12.11)


강제규 감독의 다음 작품은 예상가능하다.   한국전쟁 -> 세계대전 ->  우주전쟁!!! 그라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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