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자객/7인의 협객] 정창화 감독의 당조멸망사

2011. 9. 22. 11:37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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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말 홍콩에서 개봉된 쇼 브러더스 무협영화 <육자객>(六刺客)은 한국에서는 제목에 ‘플러스 1’하여 <7인의 협객>으로 개봉되었다. 흔치 않은 영화작명 케이스이다. 이 작품은 한국 정창화가 감독을 맡았다. 정창화 감독은 1950년대부터 충무로에서 활동한 영화인. 우연한 기회에 홍콩 쇼 브러더스의 콜을 받아 홍콩으로 건너가서 10년 정도 홍콩에서 활동하게 된다. <육자객>이 바로 그때 홍콩으로 건너가서 만든 작품 중 하나이다. 이미 홍콩에서는 장철이나 이한상, 초원 감독 등이 다양한 색채의 쿵푸/무협/액션물을 만들고 있었기에 한국에서 건너온 영화감독의 색다른 연출력이 기대되었을 것이다. <육자객>은 나름 성공했고 정창화 감독은 줄곧 특급대우를 받으며 홍콩에서 작품생활을 하였다.

당나라가 망조에 들었을 때...

때는 당나라 19대 황제인 소종시대. 이미 나라는 극도의 혼란에 빠져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황제의 동생인 ‘이명’이 자신의 영지를 벗어나 이웃 장공의 영지를 약탈한다. 울며 매달리는 불쌍한 백성들을 마구잡이로 살해한다. 이명은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근엄하게 자신을 꾸짖는 장공마저 죽인다. 조정에서는 이명의 무도함에 치를 떠는 신하도 있지만 이명의 위세에 눌러 찍소리도 못한다. 오히려 장공이 무도하게 굴었다며 그의 영지를 박탈하는 성지를 내리게 만든다. 이명은 갈수록 기고만장해진다. 장공의 억울한 죽음에 분노한 그의 부하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복수를 맹세하지만 이명의 세력은 강대하고 그의 무술은 엄청나다. 상황을 지켜만 보던 목준걸은 도저히 참지 못해 분연히 떨쳐 일어난다. 그는 6명의 자객을 이끌고 숲에서 매복한다. 장안에서 돌아오는 이명 앞에 뛰어드는 6자객. 처절한 칼싸움이 시작된다.

정창화 감독의 홍콩진출

1928년 생 정창화 감독은 최인규 감독에게서 영화를 배운 뒤 전쟁의 참화도 채 끝나지 않은 53년 <유혹의 거리>로 감독데뷔를 한다. 이후 장르 불문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지만 대체로 액션영화에 일가견을 가진 감독으로 평가한다. 특히 그는 1967년 홍콩/대만의 영화사와 합작으로 <순간을 영원히>라는 작품을 만든다. 이 작품은 서울-타이베이-홍콩을 오가는 제임스 본드 스타일의 첩보영화였다. 아시아적 특성을 살린 이 액션영화를 유심히 본 쇼 브러더스가 정창화 감독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당시 쇼 브러더스는 홍콩뿐만 아니라 동남아 각국, 나아가 북미대륙의 자사 극장체인에 안정적인 영화공급을 해야 했었다. 그래서 쇼브러더스 전속영화인뿐만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영화인들을 대거 초청하여 영화를 만들었다. 정창화 감독도 그런 케이스로 초빙된 것이었다. 정창화 감독은 쇼브러더스의 기대에 부응하여 괜찮은 액션영화를 연이어 완성시켰다. 특히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미국에서도 개봉되어 큰 흥행성과를 올렸다.

정창화 감독은 홍콩에서 쇼브러더스 작품을 만들 때 충무로 배우도 적극적으로 캐스팅했다. 이 영화에도 윤일봉, 진봉진, 남궁훈, 홍성중 등이 출연한다. 최근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정창화감독 회고전>>이 열렸는데 첫날 개막식 행사에는 많은 원로영화인들이 참석하여 정 감독을 축하해주었다.(▶관련기사보기) 배우 윤일봉도 참석하여 축사를 하였는데 윤일봉은 정창화 감독이 자신에게 악역만을 맡겨서 속상했다고 말했다. <육자객>에서 윤일봉이 맡은 역할은 악당 이명 역이었다. 거칠게 말하자면 <배트맨>의 조커나, 레옹의 게리 올드만에 버금가는 정말 못된 역할을 실감나게 연기한다. 특히 푸근한 장년 이후의 윤일봉만을 기억하는 영화팬에게는 지금의 유오성 같은 인상의 --; 윤일봉의 등장에 놀라게 된다.

중국역사와 영화

이 영화의 시나리오도 정창화 감독이 맡았단다. 영화의 배경은 중국의 당(唐)나라 19대 황제 소종(昭宗) 시대이다. 당나라는 20대 애제(哀帝)를 마지막으로 역사에서 사라졌다. 이미 측천무후 시대, 안록산의 난 등을 거치면서 당나라는 급속하게 무너져 내리던 시절이었다. 정창화 감독은 그런 당조사의 세세한 면에 집착하는 무리수를 두는 대신 붕괴직전의 왕조가 가지는 혼란상과 무질서를 배경으로 하여 자신의 주군(여기선 황제가 아니라 영지의 제후)에 충성을 바치는 무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소종은 21살에 왕위에 올랐지만 그의 즉위는 당시 조정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뿐이다. 전국에서 일어나는 반란군을 진압한 것은 각지의 번진제 하의 지역세력이었고 황제는 환관과 권력가들의 손아귀에서 선택되던 시기였다. 황제가 목숨이라도 부지하려면 그런 세력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이름만 황제이지 아무런 권한도, 권위도 없던 왕조몰락 직전의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서도 실제 황제는 등장하지 않는다. 조정에서는 관료들이 모여 자기들끼리 알아서 의논하고, 알아서 조치를 취하는 형식이다. 충신들도 황제를 위하여, 종묘사직을 위하여 울분을 터뜨리지는 않는다. 자신이 모신 주군의 죽음에 분노하고 자신의 영지의 백성들이 억울한 죽임을 당하는데 치를 떠는 것이다. 당 소종은 결국 ‘황소의 난’으로 부상한 주온(朱温,주전충)의 세력에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당의 마지막 황제 애제(哀帝)가 즉위하지만 3년도 못되어 주전충에 의해 독살당한다. 그 때 나이 17살. 주전충은 후량(後梁)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자신이 황제가 된다. 그리고 후량도 16년 만에 종말을 고하고 중국은 갈가리 찢겨지고 5대10국 시기가 된다. 장예모 감독의 핏빛 황실멸망사 <황후화>(▶리뷰)와 풍소강 감독의 <야연>(▶리뷰)이 이 시기를 다룬다.

이미지: HKMDB.COM

주인공 능운(凌雲,링윈)은 대만출신이다. 대만에서 활동하다가 홍콩 쇼브러더스와 계약을 맺고 무협배우로 인기를 끈다. <초류향>, <삼소야의 검> 등에 출연했다. 6(7)인의 자객 중 유일한 협녀로 등장하는 배우는 이려려(李麗麗,리리리)이다. 12살 어린 나이에 쇼브러더스 연기반에 들어가 연기(무술)수업을 차곡차곡 받은 뒤 수많은 쇼브러더스 무협물에 출연했다. 대표작은 <유협아>(70), <대도왕오>(73),<천애명월도>(76) 등이 있다. 그리고 단역시절의 홍금보와 임정영도 출연한다. 아마 초미세로 천천히 찾아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악당 부하 역이다. (박재환 201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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